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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그 사람을 닮는다고 한다. 먹과 붓을 아껴 담박한 울림을 주는 계산(谿山) 장찬홍(張贊洪, 1944~)의 그림을 보면 늘 겸손하고 진중한 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장흥 출생인 그는 1964년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 문하에 입문하여 그림을 시작하였다. 올해로 60년, 스무 살 청년에 시작 한 그림이 환갑을 맞은 셈이다.
다리가 불편했던 장찬홍은 무등산 자락 스승의 춘설헌(春雪軒) 근처에 기거하며 그림을 배웠다.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다’는 청계재(聽溪齋)에서이다. 그는 의재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시절이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맑고 진실된 그의 성품을 알아본 스승이 써 준 ‘계산청진(谿山淸眞)’ 네 글자를 마음에 새기며 스승이 가신 몇 십년 이후 까지도 무등산을 지켰다.
‘그림은 자신의 심성을 기르고 감흥을 표현한다’는 문인화 정신을 따르며, 무등산의 청량한 바람에 자신을 닦고 맑은 물에 붓을 담그며 끊임없이 그려나갔다. 그간 배운 문인화의 전통은 간직하면서도 어리숙한 듯 문기어린 필묵으로 대상을 단순화하여 현대적 회화미를 구축하였다. 그림에 함께 적은 화제도 한글로 바꿔 써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고자 노력하였다.
장찬홍의 산수는 고향인 장흥 억불산에서 시작하여 그가 살았던 무등산의 서석대, 입석대를 거쳐 제주도와 설악산, 금강산 등 전국 곳곳에 이른다. 명승을 담아내는 화가가 그만은 아님에도 그의 그림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힘든 상황에서도 국토 곳곳을 찾아가는 열정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비온 후의 산과 바다를 즐겨 그렸다. 비안개에 싸여 아스라이 보이는 산과 바다는 그가 본 풍경이라기 보다는 지그시 눈 감고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온 감동인 듯하다. 부드러운 안개나 엷은 색의 꽃에 싸여 우뚝 솟은 바위의 단단함은 잔잔한 미소 속에서도 한결같은 그의 그림에 대한 결기를 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