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점
의재미술관(관장 이선옥)은 새봄을 맞이하여 소장품전 <먹빛에 흐르는 정신>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의재미술관 소장품 중 서예와 문인묵화를 선보인다. 예로부터 글씨와 그림은 그 뿌리가 같으며, 뜻을 드러내는 서예와 형태를 드러내는 그림의 본질적인 동일성에 대한 주장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의재 허백련 역시 서예가 그림 못지않게 일가(一家)를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허백련은 고전과 시문에 밝았으며, 시서화의 조화를 추구하며 자신의 그림 대부분에 제시를 썼고, 작품으로써의 서예도 적지 않게 남겼다. 허백련의 필획에서 느껴지는 기운생동은 글과 그림이 하나라는 옛 구절을 자연스럽게 실감케 한다.
의재 허백련의 서예·문인묵화와 함께 제자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한다. 특히 의재 허백련과 제자가 함께 그린 문인화병풍은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한 사람의 솜씨처럼 잘 어울리는 귀한 작품이다. 먹으로만 쓰고 그려 단순해 보이지만 각자의 개성을 담을 수 있는 서예·문인묵화는 화가이기 이전에 문인으로서 그의 고매한 인격과 심오한 예술의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4전시실에서는 기획전으로 허백련의 장손인 직헌 허달재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관객들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마침내 피어난 매화의 대형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허백련은 처음에는 소치 허련의 글씨를 본떠 써보며 추사체를 익혔고, 이후 진도에 유배와 있던 무정 정만조로부터 서예를 배웠다. 이후 한나라 예서에서 당나라 구양순과 저수량의 해서, 송나라 소동파의 행서 등 다양한 서풍의 글씨를 연마하며 자신의 서체를 이뤘다. 허백련의 서예는 필획이 순박하며 유려하며 조화롭다. 두툼하면서 둥글둥글한 허백련의 서체는 후덕한 그의 성품을 닮은 것 같다.
이번 전시에서 서예와 함께 선보이는 사군자나 문인묵화 또한 붓글씨의 연장으로서 문인들이 즐겨 그린 분야이다. 허백련은 글씨를 배우던 어린 시절 사군자와 함께 묵화를 배웠고, 평생 그 뜻을 새기며 즐겨 그렸다. 문인들이 좋아했던 식물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생김새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각자 다르게 그리는 것은 이를 그리는 사람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허백련의 문인묵화는 더욱 그만의 개성이 있다.